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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생각(인문)

자식이 없는 삶(무자식이 상팔자)

by 함께 가는 사람 2023. 2. 11.


1. 무자식이 상팔자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자식이 많은 사람들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자식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필자는 사 남매의 아빠로 살아가면서 가끔은 자식이 없는 삶을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자식이 많다는 것은 힘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행복감도 엄청 많다는 것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어요. 사람에 따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으나, 자식들 중에서 부모의 속을 썩이는 자식이 많으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나오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식을 보물로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자식이 부모의 속을 썩이는 사람과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왜 자식이 없고, 자식이 나의 속을 왜 썩이는지에 대해서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자식이 장애인으로 온 사람은 왜 나에게 온 자식은 장애인으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자식이 없는 것에 대해서 하늘에 한탄한다고 하여 자식이 새롭게 오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장애인으로 온 자식을 하늘에 원망한다고 하여 그 자식이 바로 정상인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 어른들의 말을 빌려서 설명하여 보면 자식은 인연법에 따라오는 것으로 전생에 빚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식이 혈육으로 오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식이 부모에게 빚을 갚아야 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관계에서 항상 불편한 위치에 서게 되는 사람들은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부모의 속을 썩이고 있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빚을 갚아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을 것이고, 부모로 인하여 자식이 속을 썩고 있다면 자식이 부모에게 빚을 갚아야 하는 입장으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 원수 같은 자식에게 빚을 갚는 삶으로 살아보자

필자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여 보면 사남매 중에서 모두가 속을 썩이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렇듯 자식이 부모에게 올 때 전생의 빚쟁이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면 빚을 받으러 온 자식은 원수처럼 속을 썩이고 힘들게 하겠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빚을 갚으러 온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지는 않을까요.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애타게 하고 속을 썩인다면 그 아이는 나에게 빚을 받으러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 아이를 바르게 잘 성장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여 한마디 말을 하여도 부드럽게 다가갈 때 아이는 웃는 부모 얼굴에 침을 뱉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부모의 마음이 계속 전달될 때 그 아이는 처음부터 부모 마음을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게 되는 것처럼 우리 부모님이 어떠한 생각으로 아이를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잠을 자고 있는 아이에게 기분나쁘게 발로 툭툭 차면서 일어나라고 하면 아이가 벌떡 일어나면서 부모에게 반항을 하지만 부드럽게 다가가서 고운 말로 아이에게 일어나라고 하면 그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기분 나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고, 미운 아이에게 한마디 말을 하여도 더 부드럽게 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부모가 그렇게 할 때 그 아이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옆으로 삐져나가지 않게 되니까요.

장애인으로 온 자식이 있다면 이 아이가 나에게 올 때 왜 장애인으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장애인으로 왔다면 부모 입장에서 자신이 죽은 이후 아이의 삶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장애인으로 온 아이에게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부모 사랑을 많이 받고 싶고, 오랫동안 부모와 같이 있고 싶어서 장애인으로 왔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해되지 않을까요. 우리 부모들은 장애인 자식을 바라보면서 먼저 생각하는 것이 내가 죽으면 저 아이는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에 쌓여 살아가는 동안 무엇인가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 아이가 이 세상에 올 때 그것을 원하여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장애인 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들의 얼굴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가 부모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그 순간을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필자에게도 장애인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이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생에 이 아이에 대한 소망하기를 다음 생에는 우리 부부와 오랫동안 함께 살아보자 라고 원을 하였으니까 하늘이 그 소원을 들어주면서 정상인으로 보내게 되면 시집 장가를 가서 부모와 함께 오랫동안 있을 수 없으니까 장애 아이로 보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필자는 행동하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우리 부부가 우리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재미있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노동자들 보다는 의사, 변호사, 판사, 작가 등 지식인들에게 무자식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식인들에게 무자식인 이유는 그들에게 자식이 있으면 그 자식을 위해서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자식을 위해서 살아야 할 의무는 없어지는 반면에 이 사회에 부모로 살아야 하는 의무가 지어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자식이 없는 부부가 사회에 부모로 살아가지 않고 자식을 입양하여 키우게 될 때 그 자식으로 인하여 많은 고초를 받고 고통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의 부모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고 있으니까 자연으로부터 벌을 받아 삶이 어려워진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또한 장애인을 두고 있는 부모들이 즐겁게 살아가지 못하고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것 또한 장애인 자식이 그것을 원하지 않음에도 부모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으로 부터 벌을 받아 삶이 힘들어졌었던 것입니다. 장애인 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는 현재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장애인 자식과 함께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행복한 삶이질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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